뱀선생게임

[뱀선생] 어쌔신 크리드 2 플레이 (33) - 시퀀스 13 사보나롤라 암살 및 군중재판 본문

게임 연재 및 공략

[뱀선생] 어쌔신 크리드 2 플레이 (33) - 시퀀스 13 사보나롤라 암살 및 군중재판

게이머 뱀선생 2016.01.30 15:23

[뱀선생] 어쌔신 크리드 2(Assassin's Creed II) 플레이 (33) - 시퀀스 13 사보나롤라 암살 및 군중재판


게임 이름 : Assassin's Creed II (어쌔신 크리드 2)

개발사 : 유비소프트 몬트리올

유통사 : 유비소프트

출시 : 2009년 11월 17일

장르 : 액션 어드벤처

플랫폼 : PC 스팀 + 유플레이 연동

한글화 : 유저 한글 자막 패치

가격 : 디럭스 에디션 스팀 현재가(2015-12-10) 21,990원

영상 정보 : GTX970 풀옵션 1080P 60fps

트위치 : http://www.twitch.tv/snaketeacher



어쌔신크리드2 | 시퀀스13 사보나롤라 암살 및 민중봉기

검은 사제(사보나롤라)를 쫓아 고향 피렌체로 돌아온 에지오.

사보나롤라는 유물 에덴의 사과를 통해 도시의 지도자 무리들이 모두 사보나롤라를 경배있어 

현재 피렌체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 


9명의 중간보스를 잡는데 짜증이나지만 어쨌거나 모두 제압하고 

우두머리 사보나롤라를 암살하고 유물을 되찾으러~ ㄱㄱㄱ!!


몰랐는데 위키보니까 요놈 DLC에서 추가된 암살대상이였네요 ㅋㅋㅋ

어쩐지 이상하게 내용이 길더라.

DLC 용 미션이니까 플레이 타임을 길게하기위해 9명이나 잡으라고 했던거군..;;;

스팀 고티판이라 그냥 추가되있어서 ㅋㅋㅋㅋ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 실존 인물 위키 소개


이탈리아의 도미니코회 수도사이다. 1452.9.21 페라라 ~ 1498.5.23 피렌체


페라라에서 태어나 궁정 주치의 미켈레의 손자로 태어나 도덕과 신앙원칙을 지켰던 조부로부터 중세시대의 영향을 받아 르네상스를 부정적으로 보았고 이후 1475년 의학공부도 포기한 채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들어갔으며, 4년 뒤 페라라로 돌아와 안젤라 수녀원에서 성서를 가르쳤다.


이후 1482년 피렌체로 파견되어 산 마르코 수도원의 강사로 높은 학식과 금욕생활로 커다란 명성을 얻었으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평을 들었고 이후 1487년 블로냐의 일반학교 교장으로 지내다가 3년 뒤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메디치 가와 교황 알렉산데르 6세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1491년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으로 옮긴 후, 공화주의 사상과 정치적 자유주의를 기조로 한 설교로 당시의 피렌체[1] 의 참주(僭主) 로렌초 데 메디치를 공격, 교회와 속세의 도덕적 부패를 맹렬히 비난하여 민중의 인심을 사로잡아가기 시작했고 로렌초 사후 그 아들 피에로 데 메디치대에 이르려 더욱 메디치 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 절정은 1494년 이탈리아 전쟁 때 프랑스의 왕 샤를 8세의 군대가 승리하리라는 것을 예견했고 결국 프랑스군이 피렌체를 포위한 끝에 피렌체가 무기력하게 함락당하면서 그의 예견이 현실이 되었던 때로, 신의 예언자라는 그의 권위가 한층 강화된 계기가 되었고 나아가 사를 8세와 협상을 해 프랑스군이 피렌체에 무혈입성하는 것에 합의, 위기를 잘 대처하였으며 이로써 피에로 데 메디치의 망명 후에는 중산 계급을 주체로 정치적 지도자가 되어 정권을 잡았다. 

그는 귀족 정치를 배격하고 신정 정치적 민주제를 실시했으며, 알렉산데르 6세를 정점으로 하는 로마 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맞서 종교 개혁을 실현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권위에 반항하다가 1497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에게 파문당했으며, 이어 대(對) 피사 전쟁의 실패, 메디치 파(派)의 모략, 그리고 사보나롤라 자신이 펼친 과도한 신정 정치로 인해 인심을 잃게 되었다. 자신이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면서[2] 세속의 그림, 음악, 문학 등은 모두 인간을 신과 반대되는 길로 인도하는 사악한 쾌락이라 하여, 자신을 따르는 광신도들을 조직하여 피렌체의 많은 예술품들을 몰수하여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불태우는 허영의 불꽃이라는 행사를 가졌는데, 예술가를 우대하고 예술품으로 먹고 살던 피렌체 시민들의 마음 속에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싹트게 된 것. 물론 바로 반대가 나온 것이 아니라 허영의 불꽃 행사 초반에는 보티첼리가 자신의 선정적인 그림들을 알아서 갖다 태워버릴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점차 시민들의 지지가 줄어드는 데에 결정타를 꽂은 것이, 교황의 사주를 받은 교황파 성직자가 "네가 정말 신의 목소리를 듣는 예언자라면 불 속을 걸어도 멀쩡할 테지?" 하고 걸어온 도발에 그의 수제자가 넘어가 버린 것. 사보나롤라가 극구 만류하였지만 제자들의 태도가 강경하여 결국 수제자를 보내 '불의 심판'을 하기로 했는데, 막상 '불의 심판' 시행 당일 사보나롤라가 "역시 이런 무지한 짓은 안되겠다"는 나름 합리적인 태도를 보여 결국 '불의 심판'이 무산되었다. 그런데 이 기회를 노린 교황파 성직자들과 메디치 파 시민들이 "꽁무니를 빼는 걸 보니 저자는 역시 거짓 예언자, 이단자다!"라고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민중들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켜 시 행정부가 전복되었고, 반 사보나롤라 파에 의해 새로 구성된 행정부에 의해 교황에게 파문된 이단자라는 명목으로 체포되어 형식적인 종교 재판을 받은 후 1498년 5월 23일에 교수형을 당한 후 시신을 그대로 화형에 처하는 방식으로 2번 죽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부 역사서들에서는 이 날 피렌체 시민들이 '불의 심판'의 시행 과정에 대해서 토론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파했고 그 다음에 쫓겨났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어디서 전래된 내용인지 모르겠다. 그냥 진짜 화형당한거 맞다...



피아짜 델라 시뇨리아에서 벌어진 사보나롤라의 화형을 묘사한 그림.

그러나 교황과 추기경들의 부패 타락에 맞서 성서대로 살자고 주장한 그의 가르침은 알프스 북쪽으로 퍼져 나가, 마르틴 루터 등 종교개혁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비너스의 탄생으로 유명한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사보나롤라의 추종자였던 걸로 알려져 있다. 전기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화사함이 사라지고 후기 작품들에 깔리는 불안함과 긴장감들이 그 영향. 물론 이건 자신의 화풍뿐만이 아니라 그림을 의뢰한 피렌체 사람들의 변화도 반영되는 거겠지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