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선생] 매스이펙트, 드래곤에이지를 개발한 박영진 교수 인터뷰
인벤에서 인터뷰가 하나 떴는데 참 괜찮네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모바일 게임을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개발자 인터뷰가 많았는데
과거 일렉트로닉 아츠(EA), 게임로프트 출신으로 콘솔 패키지 게임, 모바일 게임을 개발해 봤고 현재 미국 LA 쉐퍼드 대학교 디저털아트학과 부학장으로 재직 중이라는 박영진 교수의 인터뷰.
EA 같은 해외 게임 회사들의 근무 경험이나 미국에서의 VR 게임의 인식에 대해서 이야기 함.
"제가 만든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이요,
음.. 번아웃 파라다이스요. 외국 회사인데도 야근 엄청 했어요."
박태학 (기자) - EA나 게임로프트 모두 한국에 잘 알려진 대형 게임사인데요. 두 게임사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점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업무 분위기라던가.
박영진 - EA는 한 가지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말 많아요. 제가 '번아웃 파라다이스' 개발할 때였어요. 도로만 만드는 디자이너가 있더라고요. 게임 아티스트, 프로그래머라면 여러가지 분야에서 제작 경험을 쌓고 나중에 이직할 때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넣으려는 게 일반적인데, EA는 그런 게 없어요. 도로 아티스트면 그냥 도로만 만들어요. 다른 거, 뭐 자동차라던가 배경이라던가 그런거 없이 그냥 도로만.
저는 처음에는 '도로만 만드는 게 어렵나? 다 비슷비슷하지 않나' 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아예 도로만 파다 보니까 그 안에도 디테일이 정말 엄청난거예요. 실제 '번아웃 파라다이스'의 도로 퀄리티가 꽤 좋은 편이에요. 그리고 이사람은 이제 도로 전문가가 되었으니, 프로젝트 끝나고 나중에 이직을 해도 타 레이싱 게임 개발사에서 데려가겠죠. 거기에서도 도로 다시 깔겠죠.
박태학 - 게임로프트는 분위기가 달랐나요?
박영진 - 모바일 게임 회사는 규모가 커봐야 한 50명 돼요.게임로프트 있을 때도 20명으로 팀 시작해서 가장 큰 규모의 팀이 50명 정도였어요. 프로젝트 끝나면 DLC 만드는 10명 가량 남고 나머지는 쪼개져서 다른 팀 가고.
그렇기 때문에 도로만 만드는 아티스트가 있기는 어렵고요. 한 명이 도로도 만들고 빌딩도 만들고... 다 만들어야 해요. 게임의 디테일은 떨어지지만, 혼자서 다 끝낼 수 있는 아티스트가 필요한거죠. 두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가 다르다고 보면 돼요.
제가 게임로프트에서 만들었던 '던전헌터3'를 예로 들면, 시니어급 아티스트 한 명이 맵 하나를 맡아서 혼자 다 만들어요. EA는 한 맵이라도 여러 사람의 아티스트, 엔지니어가 붙어서 다 같이 만들죠.
박태학 - 바이오웨어에서도 일하셨다고 들었어요.
박영진 - 네. '매스이펙트 2' 배경 그래픽 만드는 데 참여했고, '드래곤에이지 오리진'에서도 비슷한 일을 했어요.
박태학 - 유명한 콘솔 게임 개발에 많이 참여하셨는데, 그중에서 특히 기억나는 게임이 있다면?
박영진 - 음, 번아웃 파라다이스.
박태학 - 아, 저 그거 엄청 좋아했어요. 거의 50시간 넘게 한 거 같아요.
박영진 - 정말... 엄청 힘들었어요. 아마 최초라고 말해도 될 것 같아요. 오픈월드 맵을 도입해서 아예 메인 콘텐츠로 내세운 것은 번아웃 파라다이스가 최초일거예요. 가로세로 대략 25km 정도 되는데, 그거 다 마우스로 그린 거예요. 저희는 그걸 마우스 마일리지라고 부르거든요. 마우스로 하나하나 다 클릭해서 그 25km를 만드니까...
그거 만드는 팀원들이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맵 만드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버그가 생기더라도 맵이 너무 크니까, 그거 수정하는 것도 정말 힘들어하더라고요. 외국 회사는 야근 잘 안하는데, 번아웃 파라다이스 개발팀은 야근도 정말 많이 했어요. 하하.
그래도 결국 만들고 나니까 보람은 크더라고요. 그래픽, 주행감도 좋게 나왔고 평가도 잘 받았고.
"한국 학생들 실력 꽤 좋아요.
입학하기 전에 미리 어느정도 공부하고 오는 친구들도 많고요."
박태학 - 쉐퍼드 대학교 얘기 좀 듣고 싶어요. 저번에 학교 방문했을 때 최승엽 본부장을 만났는데, 학교에서 디지털아트 학과에 지원을 엄청 해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박영진 - 제가 처음에 학교에 갔을 때에 비하면 굉장히 많이 늘었어요. 퍼포먼스 좋은 장비 많이 들여왔고, 학생들이 직접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어요. VR 기기들도 브랜드별로 다 들여오는 중이고.
박태학 - 게임 쪽 교육은 박영진 교수님 혼자 담당하시는 건가요?
박영진 - 제가 게임 쪽 커리큘럼은 총괄하고 있고요. 수업 진행하시는 교수님으로는 한 분 더 계세요. 소니에도 계셨고 그 외 여러 게임회사 다니셨던... 경력 굉장히 많이 쌓으신 분이에요. 그 분이 이펙트 수업 주로 담당하시고.
이제 학과가 커지다보니 현역 게임 개발자로 계시는 분들을 교수로 더 모시려고 준비중인데요. 실력 좋으신 분을 모시기가 정말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LA에서 수준 높은 게임회사는 대부분 산타모니카에 몰려 있어요. 몇 분한테 계속 요청을 넣었다는데, 이게... 항상 출퇴근 시간이 문제예요. 거기에서 쉐퍼드 대학교까지 오는 데만 두 시간이 걸리니 너무 힘든거죠. 그게 정말 큰 벽이에요.
그래서 이번에 제가 영입하는 걸 직접 맡게 됐어요. 좀 어렵더라도 최고의 교수진을 꾸릴 생각이에요. 특히 프로그래밍 쪽으로... 유니티, 언리얼 엔진 관련 전문가들을 주시하고 있어요.
박태학 - 대형 게임사의 아티스트에서 교직의 길로 오게 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박영진 - 개발자라서 그래요. 개발자라면 자기가 정말 만들고 싶은 게임을 가슴에 품고 있거든요. 게임로프트를 예로 들자면, 거기는 프로젝트 10개 준비하면 7개는 중간에 드랍돼요. 대중성 있는 3개만 나가는 거죠. 그런데 그 드랍된 7개 중에 정말 좋은 게임들이 많거든요. 아트가 예쁘기도 하고, '아 저런 건 좀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보였어요.
박태학 - 사업적인 기준으로 보고 드랍한 게임들...
박영진 - 그렇죠. 돈이 되기 어려운 게임들이었죠. 하지만, 그 게임들을 학교에서 만든다면, 꼭 돈이 안 돼도 상관없잖아요. 학교의 목적은 교육이니까. 학생들이 그런 게임을 만들고, 그 완성된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엄청 크거든요. 게임로프트에 있을 때 그런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어요.
박태학 - 쉐퍼드 대학교에는 한국인 학생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최근 점점 더 많이 들어오고 있는 분위기라고 하던데, 교수님이 보시기에 한국인 학생들의 수준은 어때요? 다른 나라 유학생들이나 미국 현지 학생들에 비해서.
박영진 - 잘해요. 정말 잘해요. 게임쪽으로 오는 학생들이 크게 두 종류예요. '난 여기에 취업할거야' 하고 미리 좀 배우고 오는 학생들, 그리고 그냥 순수하게 게임이 좋아서 온 학생들이 있거든요.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전자에 들어가요. 방향성이 있어요. 학원을 다녔다거나 미대를 다닌 학생도 20~30% 정도 되고요.
"무겁고 어지러운 VR 헤드셋,
저희 개발자 입장에서도 숙제죠."
박태학- 이제 VR 쪽 이야기를 해볼게요. 지금 VR 시장을 보면, 커져간다기보다는 '반드시 커야만 하는 시장'이 된 것 같아요. 대기업들 투자금 규모가 이미 너무 커진 상황이라... 교수님은 앞으로의 VR 시장을 어떻게 보고 계세요?
박영진 - 방아쇠를 처음 당긴 게 페이스북이었죠. 2014년에 오큘러스 인수하면서 시장이 확 커졌고 그 이후로 약 1년 만에 대형 IT 업체들은 거의 다 이쪽 시장에 뛰어들었어요. 제 생각이지만, 당시 대기업들은 이쪽 시장 철저하게 분석하고 들어오진 않았을거예요. 일종의 감성 투자였겠죠. 그때 들어온 회사들은.
그러다가 1년이 딱 됐어요. 좀 시간 지나니 쿨다운이 온 거죠. 투자 잠깐 멈추고 기업들이 분석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게 맞는 거야? 우리가 지금 제대로 투자하고 있는 거야?'
뭐, 올해 상반기 VR 시장 규모를 보면 그들 나름대로 '맞다'라고 결론을 낸 것 같아요. 2016년 상반기 VR 시장에 들어온 돈이 작년 투자금 총합보다도 많다고 들었어요. 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거죠.
저도 초반에는 VR이 일회성 혹은 이벤트성 디바이스가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그 후로 나름대로 분석을 해봤는데... 이게 일회성은 확실히 아니에요. 앞으로 이 쪽으로 트렌드가 올 거고, 지금은 초기 단계라고 보고 있어요.
기술적으로는 지금 여러 형태의 디바이스가 막 나오고 있잖아요. 그러면서 이제 망하는 회사는 망할 거고, 도태되는 회사는 도태되겠죠. 대형 기업과 눈이 맞아서 같이 가는 회사도 있을 거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하드웨어는 안정화될거예요. 오큘러스나 바이브 말고 새로운 형태의 디바이스가 나올 수도 있고요.
그렇게 하드웨어 시장이 안정화되면, 그 위에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이 팽창하겠죠. 이미 시장 분석 전문가들도 그렇게 보고 있고요. VR이 처음에는 게임 디바이스를 기반으로 나왔는데, 아시다시피 응용 범위가 굉장히 넓어요. 꼭 게임이 아니더라도 영화라던가 시뮬레이션 쪽이라던가 공장 자동화라던가 여러 산업에서도 이쪽을 주시하고 있고요.
박태학 - 이전에도 VR 헤드셋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페이스북과 오큘러스 덕분에 대중의 인식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해요.
박영진 - 그렇죠. 오큘러스가 기존 VR 헤드셋에 비해 가격을 저렴하게 내놓을 거라고 해서 이슈를 몰기도 했고, 아까 말씀드렸듯 페이스북이 거액을 쏟아부으면서 하나의 시장이 생긴 거예요.
박태학 - 네. 그래서 저는 지금 나오고 있는 헤드셋을 '대중 지향적 VR 디바이스 1세대' 보거든요. 하지만, 이 기기들이 VR 시장의 대중화를 불러올 것 같냐고 한다면, 또 그럴 것 같지도 않거든요.
박영진 - 어떤 부분에서 부족하다고 느끼셨어요?
박태학 - 지금 제품들 써 본 사람들은 알 거예요. 솔직히 말해 아직은 무겁고, 아직은 어지럽고, 아직은 불편한 감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나오는 헤드셋이 1세대라면, 적어도 3세대 정도는 되어야 VR 게임들이 대중화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3세대 헤드셋의 기준은... 성능도 물론 더 좋아지겠지만, 일단 가벼워야 해요. 지금 교수님께서 쓰고 계신 안경 정도로.
그 정도로 기술이 발달해서, 정말 일반인들이 쓰기에 아무 거부감이 없는 수준이 된다면 그때부터 게임이 확 대중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나오는 기기들은 게임보다는 영상에 더 최적화되었다고 보는데요. 교수님은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박영진 - 그런 시각이, 사실 음... 일반적으로 보는 시각이 맞아요. 사실은 숙제거든요. 우리 VR 관련 엔지니어, 아티스트가 갖고 있는 공통된 숙제예요.
각 기업마다 나름대로 해결 방안을 내놓고는 있어요. 삼성이 기어 VR이라고 모바일 전용 헤드셋을 내놓은 것도 이 맥락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게 참 잘한 거라고 봐요.
음,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제가 학교에서 테스트하는 것 중에 안경같은 게 있어요. 프로젝터에 대면 화면이 분열되어 나오는 방식인데, 3D 글래스를 끼우면 입체로 보이거든요. 일종의 입체 안경인데, 거기에서 나름대로 가능성을 본 것 같아요. 하드웨어 개발자와 협업할 때 이쪽을 보강한다면 기존 3D 헤드셋보다 훨씬 가볍게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기기의 무게와 같이 고민해봐야 할 것이 몰입감이에요. 왜, 극장에도 3D 안경 있잖아요. 그런데 그건 옆이 뚫려 있어요. 고개 돌리면 같이 안경쓰고 있는 옆사람 보이죠. 그거 자체가 몰입감을 죽이는 거예요. 오큘러스같은 헤드셋이 몰입감을 확 높일 수 있는 이유가, 옆이 다 막혀 있으니 3D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서 그래요.
그렇다면, 고글 형태로 디자인을 잡고, 3D 글래스 스크린을 좀 더 대형화시킨다면 어떨까요. 굳이 뒤까지 3D로 구현할 필요는 없잖아요. 자신 앞에 있는 180도 범위만 잡아주면 꽤 경량화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게 말로 설명하기가 애매해요. 실제로 설계도를 봐야 하니까. 그런 하드웨어적인 문제... 고글 형태의 VR 헤드셋이 나온다면 지금보다 더 크게 대중화될 거라고 봐요.
음... 그리고 퍼포먼스도 더 좋아져야겠죠. 3D 환경에서 어지럼증 느끼는 게 아직 사양이 안 받쳐주니까 그런 거예요. 해상도, 프레임에서 더 발전해야해요. 결국 이것도 하드웨어 발전 속도에 따라 달렸죠.
박태학 - VR은 지금 미국기업들이 주도하는 산업이잖아요. 교수님은 미국에 거주하시니 그런 문화적 분위기를 직접 체감하셨을텐데, 현지에선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박영진 - 한국에도 VR방이 조금씩 생기는 분위기라고 들었는데요. 미국 기업들은 그거보다 좀 더 규모를 크게 준비하고 있어요. 그, 일종의 테마파크 형식으로.
박태학 - VR 놀이동산이네요.
박영진 - 그런 셈이죠. 하이엔드 VR 헤드셋이 아직 가격이 있다보니 일반인들이 쓸 기회가 많이 없잖아요. 그래서 테마파크 방식으로 만들어서 가족 단위로 관람객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하드코어 게이머보다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산업이고, 실제 테마파크에 들어가는 게임들도 30분 미만으로 체험하는 캐주얼 장르가 대다수예요. 수요층이 다르니 그 시장은 따로 보는 분위기죠. 순수 VR 산업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니까.
"구글 카드보드, VR 입문용으로는 좋지만,이것만 써보고 VR 산업 전체를 평가하는 건 위험합니다."
박태학 - 모바일 VR 시장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온라인이나 콘솔 쪽은 하이엔드를 지향하고 있는데, 모바일 쪽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는 중이거든요. 샤오미에서 폭풍마경, 구글에서 카드보드 같은, 저가형 VR 헤드셋을 내놓으면서 뭐랄까... 오히려 일반 게이머들에게는 이게 더 가깝게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박영진 - 저는 카드보드를 처음 봤을 때 '조크'라고 생각했어요. 오큘러스에서 그 많은 돈을 들여서 최첨단 장비를 만들었는데, 구글에서는 1달러짜리 카드보드 딱 만들고 '이것도 가상현실 장비야'라고 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기술은 똑같은 걸 베이스로 한 것이거든요, 이게...
장단이 있어요.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를 예로 들어보죠.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극장에 가야 해요. 정말 큰 스크린, 그리고 빵빵한 사운드 시스템이 갖춰진 곳에서 영화를 봐야 감동을 100% 느낄 수 있거든요. 하지만, 유튜브에 띄워 놓고 모니터로 본다면 그 느낌이라는 게 안 살아요.
오큘러스나 바이브같은 하이엔드 VR과 카드보드의 차이도 비슷하다고 봐요. 그와 관련한 기사도 많이 나왔어요. 카드보드로 VR을 체험한 사람이, 'VR이 이런 느낌이구나' 라고 전체를 판단하는 건 굉장히 위험해요.
박태학 - 일부만으로 전체를 평가하는 건 위험하다...
박영진 - 그렇죠. 사람들이 오큘러스나 바이브를 써보지 않고 저가형 VR 헤드셋을 사용하고 전체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면, VR 산업이 품은 가능성 자체가 축소되고 말아요. 블록버스터 가상현실 게임을 비롯한 헤비 콘텐츠를 만드는 개발자 입장에선 좋은 일이 아니란 거죠.
저도 카드보드 테스트를 많이 해봤어요. 관련해서 글도 썼고요. 카드보드는 가상현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수는 있지만, 모든 가상현실 콘텐츠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 제대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소니나 기타 대형 업체의 가상현실 기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썼어요. 물론, 카드보드가 VR의 '느낌'을 맛보는 데 참 좋은 기기인 것은 사실이에요.
박태학 - 얼마 전에 HTC와 밸브가 함께 만든 바이브를 써 봤는데, 개인적으로 꽤 놀랐어요. 좀 무겁긴 했지만, 퍼포먼스 면에서는 현재 공개된 VR 헤드셋 중 가장 앞서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영진 - 바이브는 손으로 잡는 컨트롤러도 그렇고 애초에 주변 기기 개발 계획을 다 짜놓은 뒤에 들어갔고, 오큘러스보다도 후반에 등장한 기기라서 그런지 안정성 면에서는 더 좋더라고요. 구성이 탄탄해요. 저도 오큘러스랑 바이브 모두 테스트하고 있고요. 아직 바이브로 나온다는 게임 소프트웨어가 많이 있지는 않아서 마켓 규모를 함부로 점칠 수는 없지만, 개발자 입장에서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 것은 확실하죠. 일단 장비가 좋으니까.
"애플이 VR 산업에 별다른 반응이 없는 건,
예전에 아이폰 처음 발표할 때와는 상황이 완전 다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박태학 - 지금 전세계의 수많은 IT 기업들이 너도 나도 VR 헤드셋을 내놓고 있는 시점인데... 저는 그 회사가 언제 뛰어들지 궁금하더라고요. '애플'.
마텔(Mattel)하고 계약해서 '뷰마스터'라는 헤드셋을 선보이기는 했는데, 이걸로 본격적인 시장 진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애플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함께 가져가는 업체인 만큼 뭐랄까... 일종의 레퍼런스가 될 만한 기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요.
박영진 - 그건... 참 좋은 질문이에요. 저도 사실 같은 질문을 갖고 있었거든요. 쉽게 생각을 하면... 현재 완벽한 VR 기기가 나올 기술적인 발전이 이뤄지지 않은 단계인데, 애플은 기업 성격상 완벽한 제품이 아니면 잘 내놓지를 않거든요. 디자인 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빈틈이 없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하는 회사예요. 일종의 철학이죠.
그리고 비즈니스적인 문제도 있을 거예요. 애플이 2008년도 초에 아이폰 1세대를 출시했을 때를 보면, 그 전에 스마트폰 형태의 디바이스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경쟁사들의 제품과는 비교가 안되는 퀄리티로 아이폰을 딱 내놓으면서 스마트폰 시장이 비로소 열린 거라고 보거든요. 새로운 시장, 새로운 플랫폼을 자기들이 만들어낸거죠.
박태학 - 그 다음에 애플이 만들어낸 환경 내에서 수많은 개발사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돈이 많이 움직였죠. 주로 애플 쪽으로.
박영진 - 그걸 본 페이스북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기분이 어떻겠어요? 엄청 부럽지. 그래서 그 회사들도 각자 자신만의 시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고요.
한데 그 때랑 지금은 환경이 달라요. 스마트폰 시장 초기에는 애플 혼자였어요. 지금은 그, VR 시장에 뛰어든 회사가 너무 많고, 덕분에 소프트웨어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분위기가 엄청 좋은 것이거든요. 작고 순발력있는 스타트업을 계속 대기업들이 주시하고 있죠. 가능성있는 회사들을 빨리 선점해야하니까.
그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애플이 과연 아이폰, 앱스토어같은 독자적인 플랫폼을 또 만들어낼수 있을지... 저는 솔직히 어렵다고 봐요.
"VR 게임 산업의 시작은 캐주얼이 맞다고 생각해요.
FPS, 액션 장르는그 다음이고요."
박태학 - VR이 대중화되면서 업계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어하는 게 그거예요. 어떤 게임 장르가 가장 큰 혜택을 볼지.
박영진 - VR이 처음 나왔을 때 아마 유저들은 FPS나 액션 게임을 하고 싶을 거예요. 그런데 사실, 제대로 만들기 가장 어려운 장르가 그것이거든요. 시야도 넓은 장르인데다 한 번 고개 돌리면 텍스쳐 다 렌더링되어야 하니 프레임 떨어지는... 굉장히 힘든 장르예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헤비한 장르보다는 캐주얼 게임 위주로... 너무 오래 걸리지 않으면서 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 그러면서도 약간의 중독성이 가미된 형태로 가는게 맞다고 봐요. 초창기에는 말이죠.
박태학 - 교수님 말씀 들으니 생각나는 게임이 하나 있는데요. 그, 예전에 위(Wii)로 나온 위스포츠 같은 거.
박영진 - 그게 맞아요. 그런 스포츠 캐주얼 게임 형태가 VR로 넘어온다면 순서상으로 위스포츠같은 게 맞다고 생각해요. 탁구나 테니스 혹은 활쏘기라던가... 앵그리버드처럼 조작이 간단한 게임도 되고요. 그 게임들이 자리를 잡고 기술이 더 발달해야 잘 만든 FPS 게임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거고.
박태학 - 실제로 대형 게임사에서 만드는 VR 게임들을 보면, 직접 조작하고 컨트롤하는 재미보다는... 음, 구경하는 재미에 포커스를 둔 게임들이 많더라고요. 반다이남코의 '섬머 레슨'도 그렇고, 에픽에서 개발 중인 '불릿 트레인'도 그런 쪽이고. 이동이 엄청 간소화되서 실제로는 슈팅에만 집중하는 게임이더라고요. 뭐랄까, 예전에 오락실에서 했던 거, '타임 크라이시스'같은 느낌으로.
박영진 - 처음부터 힘 팍 주고 기존 IP 가져오는 게임사는 많이 없을 거예요. 자칫 잘못하면 기존 IP가 쌓아온 명성에 흠집이 갈 수도 있는데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개발비도 부담될테고요.
"게임 개발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
첫째로 비전을 가져야 하고요, 두번째로 좋은 멘토를 만나야 합니다."
박태학 -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이게 마지막 질문인데요. 게임 개발자가 되기 위해 쉐퍼드 대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려요.
박영진 -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보셔야 해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면,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되고 싶다' 이렇게 계속 생각하면서 자기가 스스로 그 쪽으로 움직여야만 해요. 어디 취직해서 무슨 일을 하고 싶다는 걸 주변 사람들한테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하세요. 그렇게 스스로 자극을 줘야 돼요.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중간은 간 거예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멘토'를 잘 만나야 해요. 현역으로 뛰고 있는 멘토에게 '내 손을 잡고 이끌어주세요'라고 말해야 돼요. 저희도 뛰어난 실력을 가진 교수진을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그거예요.
저는 항상 학생들에게 그렇게 말해요.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비전부터 가지라고. 그리고 학교가 제공하는 커리큘럼을 최대한 따라오라고 해요. 100%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친구들이 가진 꿈에 최대한 가깝게 갈 수 있도록 인도해줄 수는 있어요.
몇몇 학생들은 먼 미국에 와서 기가 죽어 지내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자신감 문제예요. 미국 학생들이 잘하는 거, 영어 좀 더 잘한다는 것 밖에 없어요. 실력만 보면 한국 학생들이 부족한 거 전혀 없으니까, 자신감 갖고 도전하는 습관을 길렀으면 좋겠습니다.
원문 링크 : http://www.inven.co.kr/webzine/news/?news=159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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